갈등하는 눈동자 - 시선이 관계를 바꾸는 에세이
이슬아의 신작 에세이집 「갈등하는 눈동자」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갈등을 만들며, 또 화해의 길을 여는지 천천히 들여다본다. ‘일간 이슬아’로 매일 아침 독자에게 편지를 보내며 자신만의 문체를 다져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눈동자라는 친밀한 상징을 통해, 타인을 향한 호기심과 불안, 사랑과 죄책감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묵직하게 포착한다. 작가 특유의 짧고 또렷한 문장, 그리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한 구어체 덕분에, 읽는 동안 우리는 저자와 나란히 걸으며 서로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시선이 엮은 작은 영화

「갈등하는 눈동자」는 단편적 에피소드가 모인 에세이집이지만, 각 글은 ‘시선’이라는 공통된 줄기로 묶인다. 어린 시절 가족을 바라보던 눈빛, 대학 시절 친구와의 서먹한 침묵, 작가로서 독자를 응시하는 마음,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낯선 사람에게 품었던 미묘한 감정까지—각각의 장면이 한 편의 프레임처럼 배치되어 전체가 하나의 영화처럼 이어진다. 저자는 눈동자가 “몸의 가장 작은 근육으로도 진실을 말하는 곳”이라 말하며,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세밀하게 해부한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눈맞춤
책 곳곳에는 ‘보고 싶지만 차마 바라보지 못한’ 시간들이 등장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준 뒤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순간, 사회적 약자를 바라볼 때 느낀 어색한 미안함, 연인 사이에 스며든 질투와 비교의 시선 등,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갈등이 구체적 장면으로 그려진다. 저자는 “눈을 피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피하는 일”이라 적으며, 회피가 남기는 공허함보다 짧은 마주봄의 용기가 관계를 움직인다고 강조한다. 독자는 그 문장을 따라가며 자기 안의 시선을 점검하게 된다.
짧은 호흡, 길게 남는 여백
이슬아 특유의 짧은 대화체 문장은 이번 책에서도 빛난다. 서술은 간결하지만 문장 사이에 놓인 여백이 오히려 독자를 서서히 몰입시킨다. 한 꼭지의 길이는 대체로 짧아 지하철 한 정거장 사이에도 읽기 좋지만, 글 말미에 배치된 사색적 문장들이 여운을 길게 끌며 다음 꼭지로 넘어가게 만든다. 이렇게 구축된 리듬은 ‘갈등→성찰→다시 시도’의 반복을 부드럽게 전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경험을 덧입혀 보완하도록 유도한다.
마음을 멈추게 한 한 줄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문 구절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내 눈 속의 세계를 들키는 일”이라는 문장이다. 이 한 줄은 시선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관찰자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행위임을 상기시킨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장면은 엄마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어린 시절 회상이다. 두려움과 사랑이 동시에 담긴 그 시선 속에서, 저자는 ‘말보다 먼저 전달되는 감정의 언어’를 깨닫는다. 독자는 이 대목을 읽으며, 자신에게도 있었을 비슷한 눈맞춤의 기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변화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관계의 변화는 시선의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저자는 시선을 둘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말을 덜 하고도 더 깊이 연결된다고 말한다.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 속에 존중과 호기심이 깃들면 그 갈등은 성장의 발판이 된다. 또한 작가는 젠더, 계급, 돌봄 노동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도 시선의 윤리를 묻는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발화 내용만큼 중요하며, 책임 있는 관찰자가 되는 일이 곧 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주장한다.
눈인사를 남기며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이 ‘마주봄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체력 훈련 같았다. 읽는 동안 수없이 눈을 들었다 내리며 내 안의 편견과 회피를 확인했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눈인사를 건네고 싶어졌다. 「갈등하는 눈동자」는 거창한 해답을 주기보다, 자주 깜빡이는 우리의 눈을 가만히 붙들어 새로운 시선을 연습하게 만든다. 관계에서 자주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 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진실을 품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 책은 든든한 동행이 되어줄 것이다.
갈등하는 눈동자
저자 이슬아
출판 먼곳프레스
발매 202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