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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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 일상 속 혐오와 구조적 차별을 짚는 안내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 일상 속 혐오와 구조적 차별을 짚는 안내서

홍성수 교수의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은 법학자의 시선으로 혐오와 차별의 작동 방식을 풀어낸 책입니다. 저자는 혐오 표현 연구로 이름난 학자답게, 차별이 우연에 의한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차근차근 짚어냅니다. 특히 “나는 차별하지 않아”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자기 합리화로 변하는지, 그리고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말과 행동이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다정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차별을 읽어내는 안경

책의 첫 장들은 차별을 ‘정의’하려는 시도 대신, 우리가 어떤 안경을 써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이 뚜렷한 가해자와 피해자만으로 딱 잘라 구분되는 사건이 아니라, 제도와 환경, 관습 속에서 조용히 반복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법학자의 분석답게 판례와 실제 사례를 들여다보며, “차별 의도가 없었는데 왜 문제인가”라는 질문이 얼마나 위험한 변명인지 알려줍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쓴 ‘착각의 안경’을 벗겨낼 준비를 하게 되죠.


일상의 말과 행동이 만드는 격차

이후 장에서는 직장 회식 자리, 학교 단체채팅방, 온라인 커뮤니티 등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혐오 표현과 편견을 다룹니다. 저자는 특정 집단을 농담 소재로 쓰거나 사소한 배제 행위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여기에 내 자리가 있나?”라는 불안에 빠진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SNS에서 ‘밈’처럼 소비되는 편견이 현실의 정책과 제도에 미묘한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꼼꼼히 보여주어, 독자가 단순한 언어 감수성을 넘어 구조를 읽어내도록 돕습니다.


구조적 차별을 마주하는 법

차별을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하지 않기 위해, 책은 ‘차별이 어떻게 제도화되는가’를 다층적으로 설명합니다. 홍성수 교수는 주거·교육·노동 영역 사례를 통해 “규범은 중립적이라는 착각”을 깨뜨리고, 중립성을 명분으로 한 의사 결정이 결국 다수에게 유리한 판을 유지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특히 “공정=동일 대우”라는 통념을 비판하면서, 진짜 공정은 상황에 따른 차이를 인정할 때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최근 우리 사회 논쟁과 맞물려 큰 울림을 줍니다.


인상적인 문장과 장면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은 “차별은 가해자의 악의보다 방관자의 무관심에서 더 오래 자란다”는 부분입니다. 이 한 문장이 혐오 표현과 차별이 왜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를 설명하죠. 또, 저자가 대학 강의실에서 겪은 학생들과의 대화 장면은 인상 깊습니다. 학생들이 “선의였는데 왜 상처가 되었을까?”를 고민하며 서로의 경험을 듣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독자 역시 일상의 대화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동시에 마음을 무겁게도 합니다.


독자로서의 다짐

마지막으로 책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을 제안하며 끝맺습니다. 홍성수 교수는 거창한 선언보다, 주변의 작은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누군가의 농담에 웃지 않는 일, 무심한 제도를 질문하는 일, 기록을 남기고 연대하는 일 모두가 차별을 멈추는 첫걸음이라고요. 책을 덮고 나면 “나는 괜찮다”는 안도 대신 “내가 오늘 바꿀 수 있는 건 무엇일까”를 묻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차별의 회로를 끊어내기 위한 든든한 안내서로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작품입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저자 홍성수

출판 어크로스

발매 202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