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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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끝없는 절망 속을 걷다

사탄탱고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끝없는 절망 속을 걷다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László Krasznahorkai) 의 대표작 『사탄탱고』 는 ‘절망의 무한 루프’라고 불릴 만큼, 인간 존재의 어둠을 깊고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읽는 소설’을 넘어, ‘견디는 소설’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무겁고, 길고, 반복되는 문장 속에서 우리는 현실과 환상, 구원과 파멸의 경계를 서성입니다.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그린 ‘사탄의 춤’

『사탄탱고』의 배경은 한때 번성했으나 이제는 완전히 쇠락한 헝가리의 시골 마을입니다. 마을엔 몇 가구의 주민들만 남아 있고, 비는 그치지 않고 내리며, 땅은 질퍽하게 썩어갑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속이고, 감시하고, 또 기대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남자 ‘이리미아시’가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약속하지만, 그가 이끄는 춤은 구원이 아닌 ‘사탄의 탱고’ 입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집단적 광기와 타락, 그리고 거짓된 구원의 위험함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 하지만, 그 끝에는 더 깊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읽는 내내 숨이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이어지며, 독자는 마치 자신이 그 마을의 진창 위를 걸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 숨 막히는 리듬

『사탄탱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 구조입니다.
보통의 소설처럼 문단이 끊기거나 대화가 단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한 문장이 수십 줄에 이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시점은 계속 이동하며, 인물의 의식과 환상이 섞여 흐릅니다.

이런 문체는 독자에게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리듬 덕분에 소설은 최면적인 몰입감을 만들어냅니다.
비가 내리고, 진흙이 발에 달라붙고, 절망이 점점 짙어지는 그 풍경이 마치 하나의 긴 악보처럼 이어집니다.
그래서 ‘사탄탱고’라는 제목이 단지 은유가 아니라, 진짜 리듬과 구조를 갖춘 문학적 탱고로 느껴집니다.


절망 속에서도 사유를 멈추지 않는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헝가리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그의 작품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도스토옙스키, 그리고 베켓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됩니다.
그는 늘 ‘절망 속의 인간’을 그리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생각하는 인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사탄탱고』에서도 인물들은 타락하고 추악하지만, 그들이 끝내 사유를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적입니다.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도 작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체험

이 소설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독 후 남는 감정은 단순한 피로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토록 불편하고 지독한 이야기를 견뎌냈다’는 정화의 감정이 찾아옵니다.
어쩌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독자에게 “삶이란 결국 이런 탱고와도 같다”고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그러나 그 춤 속에서도 우리는 끝내 멈추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요.


영화로 다시 살아난 ‘사탄탱고’

이 작품은 헝가리의 거장 벨라 타르(Béla Tarr) 감독에 의해 1994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무려 7시간 30분짜리 흑백영화로, 문학사와 영화사 모두에서 전설로 남은 작품입니다.
벨라 타르는 원작의 리듬과 절망을 그대로 시각화하며, 화면 속에 흐르는 끝없는 비와 침묵으로 ‘사탄탱고’의 본질을 완벽하게 옮겨놓았습니다.

소설과 영화를 함께 감상하면, 한 인간의 절망이 어떻게 다른 예술 언어로 변주될 수 있는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사탄탱고』는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과 피로를 느끼게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문학의 진정한 힘을 드러냅니다.
이 작품은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세계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사유하고, 움직이고, 춤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춤이 사탄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우리는 결국 그 무대 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비가 내리는 저녁, 조용한 방에서 이 책을 펼쳐보세요.
당신도 어느새 그 마을의 진창 위를, 천천히, 그러나 멈출 수 없이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