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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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우어 - 천선란 SF 생태 디스토피아

모우어 - 천선란 SF 생태 디스토피아

천선란의 소설 『모우어』는 미래적 상상력과 따뜻한 인간 이해가 만나는 작품입니다. 《천 개의 파랑》, 《어떤 물질의 사랑》 등을 통해 이미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천선란은, 이번 책에서 생태와 기술, 기억과 돌봄을 묶어내며 다시 한 번 독특한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장르적 긴장감 속에서도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우리 시대가 고민해야 할 윤리와 공존의 문제를 다정하게 묻습니다.


낯설지만 익숙한 미래

『모우어』는 기계와 생명이 공존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이름 없는 모우어(농기계 겸 생명체 돌봄 장치)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둡니다. 천선란 특유의 묘사 덕분에 금속과 흙, 전선과 뿌리가 함께 숨 쉬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인물들은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독자는 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들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세계를 조금씩 바꿔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돌봄의 기능을 넘어선 관계

표면적으로 모우어는 농사를 돕고 생태계를 관리하는 도구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것이 단순한 기계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주인공은 모우어와 함께 일하며, 땅과 곡식,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과정에서 ‘기능’과 ‘존재’의 경계를 다시 묻습니다. 모우어가 보여주는 작은 반응, 말 없는 동행은 어느새 주인공에게 동료이자 친구가 되고, 그 관계 속에서 잊고 있던 기억과 상처가 조금씩 치유됩니다. 줄거리는 크고 빠른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과 느린 관찰 속에서 서서히 쌓여가는 감정의 층위로 진행됩니다.


기술, 생태, 그리고 윤리

이 작품은 기술 발전이 자연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돌봄의 윤리는 어디서 출발하는지 질문합니다. 모우어는 효율을 위한 기계이지만 동시에 생태의 일부가 되고, 사람들은 그에게 책임을 느끼며 새로운 관계 윤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천선란은 무겁게 설교하지 않고, 일상의 장면과 조용한 대화로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자연을 도구화하는 태도와 자연을 이웃으로 대하는 태도 사이에서, 독자는 스스로 선택을 고민하게 됩니다.


침묵 속의 상호 이해

가장 여운이 남는 순간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장면들입니다. 새벽안개 속에서 모우어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흙을 고르고, 주인공이 그 손길을 따라잡는 장면은 무언의 대화처럼 다가옵니다. 또, 모우어가 고장나 멈춰 서는 밤, 주인공이 그 곁을 지키며 손을 얹는 대목은 기술물이면서도 생명체처럼 다뤄지는 모우어의 존재감을 극대화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독자로 하여금 “돌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떠올리게 하며, 기계와 인간 사이의 감각적 신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줍니다.


부드러운 리듬의 서사

천선란의 문장은 간결하지만 감각적 이미지가 풍부해, 금속과 흙, 빛과 바람이 피부에 닿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자연과 기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냄새, 소리, 온도를 세심하게 포착해 독자의 감각을 깨웁니다. 리듬감 있는 단문과 여백이 반복되면서, 독서는 마치 들판을 천천히 거니는 산책처럼 진행됩니다. 이 부드러운 리듬 덕분에, 무거울 수 있는 주제가 부담 없이 스며들고,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마음 한켠이 포근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함께 곱씹을 메시지

『모우어』는 최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함께 살아가는 법”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기계와 자연,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가 서로의 리듬을 존중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미래가 단단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주변의 사소한 사물과 공간에도 새롭게 말을 걸고 싶어질 것입니다.


마음에 남는 여운

이 소설은 거대한 서사보다는 작지만 깊은 울림으로 오래 기억됩니다. 모우어와 주인공이 주고받는 침묵, 흙을 만지며 느끼는 온기, 서로를 돌보려는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천선란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또 한 번 만족할 것이고,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느린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며, 당신만의 ‘돌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모우어

모우어

저자 천선란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