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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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 정대건이 그려낸 세상과 인간의 깊은 내면

급류 - 정대건이 그려낸 세상과 인간의 깊은 내면

세상은 언제나 ‘흐름’ 속에 있다. 고요한 물길처럼 잔잔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엔 예고 없이 몰아치는 ‘급류’가 되어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정대건 작가의 장편소설 『급류』는 바로 그 혼란의 물살 속에 던져진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목부터가 암시하듯, 이 소설은 거대한 사회적 흐름과 그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운명을 탐구한다. 단순한 사회소설을 넘어,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의 미묘한 결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시대의 물살 속, 흔들리는 인간들의 초상

『급류』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작가는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권력의 폭력, 그리고 도덕과 생존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파헤친다. 주인공은 거대한 시대의 물살 앞에서 방향을 잃은 한 인간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결국 그 흐름에 휩쓸리듯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정대건은 이 인물의 여정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과연 급류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가?”

이 소설의 강점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생생한 묘사에 있다. 작가는 사회적 부조리를 단순히 비판하거나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그래서 『급류』는 단순한 ‘사회문제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심리소설로도 읽힌다.


정대건의 문체, 냉정함 속의 따뜻한 시선

정대건의 문체는 놀라울 만큼 절제되어 있다. 과장된 표현 없이 차분하게 상황을 그려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그는 마치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담아내면서도, 그 속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독자는 인물들의 비극적인 선택 앞에서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함께 가슴 아파하게 된다.

특히 작가는 ‘침묵’의 미학을 능숙하게 활용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과 상황을 여백 속에 담아내며, 독자로 하여금 그 의미를 스스로 채우게 한다. 이는 정대건 작품이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넘어, 하나의 ‘사유의 경험’으로 확장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을 비추는 거울, 그리고 그 속의 나

『급류』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완벽하지 않으며, 그들의 선택은 늘 옳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침묵하거나, 혹은 타협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단면이 비친다. 정대건은 독자에게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너라면 이 물살 속에서 어떻게 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면서도 그 중심에 ‘인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급류처럼 휘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후회하고, 희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정대건은 놓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급류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무리하며 — 우리가 마주한 ‘급류’

정대건의 『급류』는 단순히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방향을 잃고 떠내려가는 감각,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혼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의지. 이 모든 것이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책을 덮고 나면, 마음 한편이 묘하게 먹먹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역시, 거대한 급류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정대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급류에 휩쓸릴지언정, 그 안에서 끝까지 ‘인간’으로 남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급류』는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경험하는 책이다. 세상과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이 작품에 있다. 그리고 그 사유의 여운은, 마치 물살이 지나간 후의 고요함처럼,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